이글루, 안녕.
때가 된 것 같다.
이글루답게 춥다기보단, 허전하다 못해 인기척이 낯선 이 곳을 닫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을씨년스러운 것이 그렇게도 싫었건만 이 곳을 그냥 툭 드러내기엔 부족한 것 같아서 망설였고 또, 하다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닫아놓는 것이 나은 쪽이 되고 말았다. 결국은 을씨년스러움은 싫었지만 언제나 떨치지 못했던 거다.

처음 이글루에 오게 된 것은 우연찮게 검색 중에 봤던 어떤 동성애자의 블로그 때문이었다.
이반 모임에 관계도 있고, 디자인 관련 업무를 했던 분 같은데 - 찾을 순 없을 것 같지만 - 노란 바탕에 군데군데 있는 오렌지와 붉은 빛의 느낌이 휘말려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줬던 기억이 난다.
난 밖에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인정받고 싶었고 내가 중심이 되는 소소한 커뮤니케이션 안에 있고 싶었다.
네이버 검색에 지친 새벽에 사람들이 가끔 찾는 그런 공간에 자신의 마음과 이야기를 무장해제한 채로 드러내는 것이 부러웠다.
지나치는 내 안의 면면의 소중함을 기록하지 않고 잊기엔 아깝다고 생각했고 나의 스타일에 믿음도 있었다.
무엇이든 시작하기에 늦지 않은 시기라고 느끼는 게 타당한 때였던 것 같다.

뻔한 자조겠지만 지나간 것으로 두려고 생각하고 보려니 내가 그렸던 것들은 어쩌면 한 번도 내 곁에 없지 않았나 싶다.
말끔한 마음으로 거울 보듯 쓰고 싶었는데 과연 그랬는지.
유비하고 조조 중에 누가 더 무서운 놈이냔 말에 독하게 맘 먹은 조조보다 무엇이 대의에 따르는 것인지 벗어나는 것인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에 이른 유비가 진짜 무서운 놈이라던 만화컷이 생각난다.
지금도 부끄럽지 않은 나의 진심을 담은 포스트들이 있는데, 어쩌면 그 분위기가, 한 순간의 강렬한 색감이 나를 삼켜버린 것이다. 삼켰는지 물렸는지 넘어갔는지 애써 분간해보려해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언제나 세상은 너무 물렁물렁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누어 추출해내려하면 바보가 되고 말겠지만 난 이글루를 좋아했던 것 같다.
블로그를 이글루라 이름하다니 대단하지 않냐며 배시시 웃으며 괜히 기분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글루의 배경색과 화면배치와 제목과 본문의 글자크기의 느낌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글자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눈의 초점을 풀고 봤을 때 나의 글자들의 줄이 만든 모양을 기억할 거다.
집에 오는 버스에서 어떤 포스팅을 해야겠다고 번호를 매겨가며 외우던 것, 도서관에 앉아 포스트잍에 메모했던 것, 잊으려해도 다시 기억날 거다.
포스트를 올리는 동안 나의 글과 나눈 조밀한 이야기는 그 모습은 영원히 잊혀져 돌아오지 못해도 그 촘촘했던 느낌이 날 허전하게 하고 또 쓰게 하겠지.

아, 나의 이글루.
동조해주는 사람이 없고선 힘을 내지도 스스로를 믿지도 못하는 내게 혼자 괜히 미소짓고 만족스러워하기엔 너무 을씨년스러웠고, 그렇다고 동정을 바라기엔 내가 원하는 독자에게 은근함과 다의성을 가장한 채 밀어붙이는 어떤 것이 되고 말아서, 결국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누구에게 하소연하지도 못할 곳이 되고 말았다.
가끔은, 글이 쌓이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은 민망하니 몇 달 간의 포스트가 쌓이면 그 때에 몇몇 불러볼까 생각했었는데 - 결코 그럴 수 없었다. 난처할 정도로 쓰고 또 그렇게 계속한 나를 탓할 밖에.

언제까지 공개된 내용 없는 나의 이글루를 에스케이가 놓아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는 묻어둔 채로 지나가게 할 생각이다.
가사 상태의 이글루였지만 이렇게 관에 못질하는 느낌이 드니 속이 무겁다.
그러나 쉬어도 쉬는 게 아닌 이 분위기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니까. 이미 답은 정해놓았다.

여기까지 쓰는데 걸린 시간과 여태 내가 이글루에 글을 써넣으며 보낸 시간을 생각한다.
그 시간들과 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나와 나는 보지 못했지만 분명 계속 변했을 나의 표정. 조밀하게 흘러간 나의 새벽시간들. 쓰고, 다시 읽고, 고치려다 - 그만 두고. 읽다 괜히 좋아하고.
누가 이 모든 걸 짧게 요약하려 하거나 쉽게 평가해버리면 - 평가하려든다면 나는 너무 화가 나겠지.
하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내버려두게 되고 굳이 화내지도 않을 거다.
그렇게 또 긴밀했던 느낌만 남고 무엇이었는지 다 가 버리겠지.
손을 흔들게 된 마당에 어쩌면 그 느낌이면 더 바랄게 없지 않을까.
이글루, 안녕.
by latin | 2007/06/11 03:32 | que sera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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